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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아이의 고사리손과 어르신의 거친 손이 만나는 곳, 구리시 '상자 텃밭'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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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고사리손과 어르신의 거친 손이 만나는 곳, 구리시 '상자 텃밭'의 미학

콘크리트 빌딩과 아스팔트 도로로 대변되는 현대 도시에서 '흙'을 밟고 산다는 것은 이제 엄청난 특권이자 사치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흙 대신 인조잔디와 우레탄 바닥에서 뛰놀고, 은퇴한 어르신들은 TV 리모컨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무료한 하루를 보낸다. 자연과의 단절은 현대 도시인들에게 정서적 메마름과 고독감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질병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도심의 삭막함 속에서 구리시가 추진 중인 ‘찾아가는 도시농업’ 사업의 확대 소식은 단순히 '녹지 공간을 늘렸다'는 수치적 성과를 넘어, 도시의 정서적 온도를 올리는 훌륭한 복지 행정이라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구리시는 최근 경로당과 어린이집 등 신규 대상지 5개소를 추가 발굴해 관내 도시농업 거점을 31개소로 늘렸다. 시가 제공한 것은 거창한 전원농장이 아니다. 베란다나 마당, 옥상 한구석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상자 텃밭'이다. 하지만 이 작은 상자 속에 담긴 흙과 생명력이 불러일으킨 지역 사회의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스마트폰 화면을 이긴 초록빛 생태 교육

오늘날 보육교사들과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아이들의 조기 디지털 중독이다. 자극적인 영상 매체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자연의 느린 시간표를 가르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구리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상자 텃밭을 깔아주고 전문 강사를 파견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5회 과정 동안 진행되는 생태 프로그램 속에서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 대신 흙을 만지고 모종을 심는다. 내가 물을 주지 않으면 식물이 시들고, 정성을 들이면 정직하게 초록빛 잎사귀와 빨간 토마토로 보답한다는 '생명의 정직한 법칙'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편식을 하던 아이가 자신이 직접 기른 상추라며 밥상 위 채소를 스스럼없이 먹는 변화, 이것이 바로 수백만 원짜리 명품 교구도 해내지 못하는 도시농업의 진짜 교육적 마법이다.


경로당의 노년, 고독감 대신 '수확의 성취감'을 심다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은 건물을 새로 짓는 기술이 아니라, 소외되던 주민들이 생명을 매개로 다시 소통하게 만드는 관계의 회복이다."

 

상자 텃밭이 경로당으로 들어갔을 때 일어난 변화는 더욱 감동적이다. 고령화 사회 속에서 노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 빈곤보다 '내가 사회에 더는 쓸모없을지 모른다'는 역할 상실감과 고독감이다.

 

어르신들은 거친 손으로 상자 텃밭을 일구며 다시 '무언가를 키워내는 주체'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한다. 매일 아침 텃밭을 살피기 위해 집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신체 활동량이 늘어나고, 직접 기른 고추와 상추를 따서 동네 이웃, 경로당 노인들과 쌈을 싸 먹으며 공동체의 밥상을 채운다. 텃밭이 외로운 노년을 치유하는 훌륭한 '자연 치유 병원'이자, 끊어졌던 이웃 간의 대화를 이어주는 '마을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구리시 관계자의 말처럼, 도시농업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생명을 접하는 환경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예산을 들여 번듯한 공원을 크게 짓는 것보다,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골목과 마당에 상자 텃밭 하나를 더 놓아주는 행정이 훨씬 실속 있고 따뜻하다.

 

부디 구리시의 31개 텃밭에서 피어난 초록빛 싱그러움이 도심 전체로 번져나가기를 바란다. 올여름, 조그만 상자 텃밭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추가 자란 길이를 재며 웃음꽃을 피울 구리시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행복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져 가슴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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